
꼭두각시 왕의 방/도서출판 빛봄/빛봄출판사
출판사: 도서출판 빛봄/빛봄 출판사
작가: 히루
마리엘라는 찢어질 듯한 가난과 함께 주정뱅이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자란 불쌍한 여자다. 그러나 19살의 어느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자는 그녀가 왕족의 피를 이은 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우르나의 왕이 될 것을 권한다.
그러나 비참한 과거를 버리고 왕위에 오른 마리엘라에게 요구된 왕의 의무란 바로 아스로크 제국의 황제 에이데른의 잠자리 상대가 되는 것이었다.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마리엘라는 자신이 질문했으면서 그 의도를 몰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머리가 나쁘고 무능한 사람이니까. 누군가의 명령이 없으면,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마리엘라는 덜덜 떨면서 유자르의 손을 잡았다.
“저는……. 잘한 건가요?”
유자르는 어둠 속에서 활짝 웃으며 마리엘라의 어깨를 다독여줬다. 정말 잘했다면서. 아주 훌륭하다면서.
“네, 정말 잘하셨습니다. 아주 훌륭했어요.”
당신으로 인해 오늘 수많은 백성이 구원받았다면서, 우르나의 미래를 위해 아주 큰일을 해냈다면서. 그리고 왕을 칭찬한 노인은 자신의 손을 붙잡았던 마리엘라의 손을 놓았다. 냉정하게 그 손을 놓아버린 노인은 왕의 어깨를 다독이던 손으로 그녀가 빠져나온 방의 문을 가리키더니.
“자, 마리엘라 님. 어서 돌아가십시오. 아스로크의 황제가 깨어나실 겁니다. 그가 돌아갈 때까지 왕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인자하고 냉정한 미소를 본 순간 마리엘라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아주 무겁고, 아주 무서운 무언가가.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것은 제가 알아서 해드릴 테니, 그러니 당신은 우르나를 위해, 당신의 몸으로 저 방에서, 그 몸에 이끌린 자들에게서 모든 것을 쥐어짜내십시오. 당신은 그것만 해주시면 됩니다.”
도망칠 수 없게 그녀를 찍어누르는 새까만 압박에 마리엘라는 숨을 집어삼키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눈물이 떨어졌지만 어둠 속에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유자르가 원하는 대답을 내뱉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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