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사의 신분으로 결코 품어선 안 될 욕망을 품었다. 결코 바랄 수 없는 상대에게 불순한 욕망을 품었다. 그것은 죄악이다. 그것이 죄악임을 알면서도 꿈을 꾸고 만다. 고결한 성녀는 가엾은 어린 양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유혹하고, 성녀란 이름의 새하얀 독은 나약한 인간을 죄악으로 물든인다. 그것은 음탕한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은 짐승과 같은 욕구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성녀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뷔칸트의 역사상 가장 문란하고 음탕하다고 알려진 탕녀의 이야기. 같은 시대를 살아간 성녀와 똑같은 이름의 아르테시아란 여자가 남긴 자신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역사에 새겨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 <탕녀의 초상> 그것은 그녀 자신이 이뤄낸 삶의 증거. 고결하지도 않으며, 자애롭지도 않으며, 숭고하거나 순수하지도 않은 탕녀. 그것이 아르테시아 크레아프트가 세상에 남긴 자신의 이름.
어차피 오늘 보고 더 이상 못 볼 사이였다. 나는 이제 칩거 생활을 할 거고,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엘리샤와 황태자 사이를 계속 갈라 놓는다 해도 언젠가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 그게 진짜 소설 속 내용이고, 나는 그냥 황태자의 이복동생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게 운명이라면 엘리샤의 운명을 내가 뭐라고 바꿀 수 있을까. ?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이제 우연이라도 마주칠 수 없을 테니까.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수건을 여미어 주며 말했다. ? “당신이 황태자와 만나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 힘을 주면 부러질까, 아기 다루듯이 제 손목을 살피는 카니아의 모습에 엘리샤는 생각이 많아졌다. 의외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모습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 “황태자는 성정이 옳지 못합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혹시라도 자신의 권위를 앞세워 황명을 내리지 않을까 하여 그랬습니다.” “……..” “그리고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 “전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매우,” “……..” “보고 싶었고요.” ? 엘리샤는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한테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미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의 가장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함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의 정점에 있는 그 여자가 그 날 나를 구했다. 그러나 그건 곧 이어질 지옥의 시작이었다. 내가 이 집으로 들어 온 날, 정말로 구원 받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스물한 살의 주영은 대중교통을 애용한다. 특히 버스를. 이날도 평소처럼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잠깐만 담벼락에 기댔는데… 홀라당, 주영의 세상이 바뀌고 말았다. “너는 이제부터 여기서 살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집에 보내주는 거 아니었어요?” “단순히 길을 잃었다면 그랬겠지만, 주영이 너는 지금 그런 게 아니야.” “나더러 미아랬잖아요.” “여기까지 오면서 이상한 거 못 느꼈어?”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남자라고는 보이지 않는 무남동에서 주영은 ‘미아’ 취급을 당하고 만다. 앞으로는 다른 미아들처럼 정착해 살아가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 ‘미아보호소’ 직원이라는 김미영 팀장에 의해 네 식구가 사는 집으로 위탁되는데. “아, 얘가 주영이구나. 내 이름은 주현인데.” 엄마도 사랑스러운 두 딸도 모자라 아버지까지 여성인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적응하기란 어째 순탄치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새 룸메이트가 된 맏딸은 어쩐지 주영을 아주 싫어하는 눈치다. 세 살이나 어린 그녀의 첫인상은 얼음장보다 차갑고, 고양이처럼 앙칼졌다. “야.” “저기… 일단은 내가 언니인데….” “뭐래, 가정 파괴범이.” 아, 나 이런 데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본의 아니게 떨어진 금남 구역 ‘무남동’에서 희한한 네 식구와 펼치는… 가끔은 우습고, 가끔은 가슴 따뜻한 오주영의 청춘 성장기!